2024 신춘문예 당선작 (단편소설)부문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링크타고 함께 읽어보아요
▶ 부산일보 당선작
조성백, <6이 나올 때까지>
[2024 신춘문예-단편소설] 6이 나올 때까지 / 조성백
당신은 궁금하다. 무엇이? 손바닥에 들어온 정육면체가 1에서 6 중 뭐가 나올지
www.busan.com
▶ 서울신문 당선작
이지혜, <북바인딩 수업>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www.seoul.co.kr
▶ 조선일보 당선작
권희진, <러브레터>
[2024 신춘문예] 러브레터
2024 신춘문예 러브레터 단편소설 당선작
www.chosun.com
젊은 경비원의 어두웠던 과거, 짧았던 사랑..
▶ 동아일보 당선작
임택수, <오랜 날 오랜 밤>
오랜 날 오랜 밤
1968년 경남 진주시 출생||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졸업||프랑스 폴 베를렌 메츠 대학 불문학 석사 졸업·박사 준비과정 수료
sinchoon.donga.com
평범하지만 경건한 인생
▶ 한국일보 당선작
김영은, <말을 하자면>
[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말을 하자면'
www.hankookilbo.com
1·2인칭 시점으로 청년 노동자의 사망과 사회운동이라는 소재를 다룸
▶ 문화일보 당선작
기명진, <유명한 기름집>
유명한 기름집 - 기명진[2024 신춘문예]
www.munhwa.com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
▶ 세계일보 당선작
유호민, <붉은 베리야>
신춘문예 - 소설 [2024 신년기획]
마지막 가족여행의 마지막 저녁,
www.segye.com
▶ 매일신문 당선작
홍기라, <안나의 방>
[2024 신춘문예 당선작] 안나의 방
일러스트 : 손노리 작가....
www.imaeil.com
▶ 전북일보 당선작
신가람, <미지의 여행>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미지의 여행 - 신가람
www.jjan.kr
▶ 강원일보 당선작
임희강, <시계를 넘어>
[2024 신년특집 신춘문예]
시계를 넘어 - 단편소설 임희강
www.kwnews.co.kr
▶ 영남일보 2024 신춘문예 당선작
이수정, <코타키나발루의 봄>
www.yeongnam.com
▶ 경인일보 당선작
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이준아, <하찮은 진심>
www.kyeongin.com
▶ 경상일보 당선작
[2024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소설] 마리모 - 오승경
www.ksilbo.co.kr
▶ 무등일보 당선작
장대성, <러닝>
[제36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러닝
그림= 임근재 서양화가 러닝 -
mdilbo.com
▶ 불교신문 당선작
김성희, <나비춤>
[2024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단편소설 ] 김성희 ‘나비춤’ - 불교신문
www.ibulgyo.com
2024국제신문 단편소설 당선작- 공존 /김슬기
모든 것이 생동하는 아침엔 승환이 죽을 것 같지 않았다
핸드백 속 전화벨이 울린다 승환의 처다 “방금 갔어요”
고모는 나이 많은 푸들을 보러 집에 다녀오겠다 했다
모두가 떠난 집을 지킨 고모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형님, 오늘을 넘기기 어렵답니다.
승환의 처가 짧은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회신을 보낼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지 못하고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주방으로 향했다. 물 끓는 소리가 들린 지 꽤 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커피포트는 마트에서 처음 일하게 된 날 세일 품목에 있어 샀던 것이었다. 소비자 정가 5만 원, 세일가 2만 9천 원.
내일은 없어요, 이 가격!
조바심이 났다. 그 길로 커피포트를 사서 퇴근길에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 월급을 받을 즈음, 커피포트는 초특가 파격 세일을 해 2만5000원이 되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는데, 고작 그런 것 하나 맞추지 못하고 사는 나 자신이 싫었다. 4천 원을 손해 본 커피포트는 꼬박 8년 동안 제 몫을 성실히 해내고 얼마 전 고장이 났다. 지난달이었다. 여느 날처럼 머그컵에 인스턴트 스틱 커피 두 개를 까 넣고,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전원을 켜두었다. 바글바글 물 끓는 소리가 들려올 때쯤 잠시 공과금 용지를 살폈다. 2만 원 정도 나오던 수도요금이 5만 원이나 청구돼 있었다. 혼자 사는 집에 가당치 않은 요금이었다. 용지 아래에 적힌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통화량이 많아 상담원 연결까지 예상 대기시간은 15분입니다.
안내 멘트 한 번, 제목을 모르는 클래식 음악 한 번, 안내 한 번, 클래식 한 번…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담원 김지선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랜 기다림 끝에 들려온 목소리지만, 나는 ‘도와드릴까요’ 하는 물음이 낯설게 느껴져 머뭇거렸다. 마트에서 일하면서, 나 또한 매일 습관처럼 하던 말이었는데도 그랬다. ‘다른 게 아니고 제가…’ 하고 입을 떼어내는데 부엌에서 타는 냄새를 맡았다. 놀라 전화를 끊고 부엌으로 향했다. 수증기로 눅눅해진 공기를 헤치고 커피포트 쪽으로 갔다. 물이 없는데도 커피포트의 끓음 버튼에 빨갛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전원을 뽑았다. 커피포트는 바닥이 조금 그을렸을 뿐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키친타월로 그을린 곳을 닦아 내고 한 컵 반 정도 되는 물을 부었다. 이번엔 식탁 의자를 당겨와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렸다. 물이 끓는데도 커피포트는 멈추지 않았다. 무한히 끓고 또 끓었다. 커피포트가 언제 초특가 파격 세일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중요했지만 사소해진 고장에 적응하며, 나는 오래된 커피포트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날들을 이어 나갔다.
한 매니저님. 오늘 출근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유: 동생의 위독)
커피포트 앞에 서서 승환의 처에게 회신하는 대신 마트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썼다.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젊은 한지원 매니저에 대한 평가는 ‘호’와 ‘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편이었다. 방학 기간만 파트타임 캐셔 일을 했던 대학생이나,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4시간 동안만 물품 정리 일을 맡은 3개월 차 직원들은 그의 번듯한 외모,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했다. 마트에서 적게는 2년 많게는 10년 이상을 일해 온 사람들은 달랐다. 구 매니저가 불미스러운 일로 마트를 떠난 뒤 부임한 한 매니저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비상계단, 창고 등 한 매니저가 없는 자리가 곧 그의 흉을 보는 최적의 장소였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겨 눈빛이 거슬린다, 너무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다,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이 눈곱만큼도 없다 등. 이유도 다양했다. 언젠가 한 번은 한 매니저가 개인 사유를 들어 연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는데, 구석진 곳에 숨어서 수군덕거리던 직원들이 계산대와 매대 같은 듣는 귀가 많은 곳에서 큰 목소리로 그의 흉을 봤다.
“나는 말이야, 10년 일하면서 교통사고 났을 때 딱 한 번 쉬었어. 젊은 사람들이 대학 나오고 좀 배웠다고 덜컥 매니저로 부임하면 이게 문제야. 본인 생각 밖에 안 하는 거.”
나 또한 마트에서 꼬박 8년을 일하며 한 번도 연차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했다는 편에 가까웠다. 승환이 처음 병원에 입원한 날도 정시 퇴근을 했다. 병원에 도착한 때는 면회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병원 뒷문으로 조심스럽게 입원실까지 올라갔다. 피곤할 텐데 집으로 바로 가지, 이렇게 늦게. 약 때문에 잠이 많아진 것 같다며 부스스 일어난 승환이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급하게 오느라 봉투에 담지 못한 돈뭉치를 꺼내 누워 있는 승환의 허리 밑에 찔러 넣었다. 얼마 안 된다. 병원비에 보태. 얼굴 봤으니 됐다. 많이 자야 빨리 낫는다. 나는 근무를 하며 초조한 기분이 들 때마다 떠올렸던 말들을 승환에게 순서 없이 쏟아냈다. 애써 작은 목소리를 내었지만, 6인실 다른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환의 손을 슬며시 뿌리쳤다. 깜깜한 병실에서 놓아둔 가방을 손으로 더듬어 찾아 집어 들었다. 가볼게. 언제 또 와. 자주 올 거야. 너무 자주는 오지 마. 많이 자, 최대한 많이.
확인했습니다. 다음엔 미리미리만 알려주세요. 근무표에 이상 생깁니다.
한 매니저다운 답장이었다. 나는 냉동 만두 코너를 담당하는 박영금 여사가 이 문자를 보았다면 무어라 말했을지 상상했다. 울림통이 큰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한 매니저는 무당이라도 되냐. 배탈 나는 것도, 사고 나는 것도 어디 한 번 본인은 미리미리 잘 알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굴러온 돌 주제에 매니저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게 아주 재수가 없어. 나는 잠시 박영금 여사의 마음이 되었다가, 그가 보낸 메시지를 여러 번 곱씹어 읽었다. 사실 별다른 악의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석하기에 따라 선의일 수 있는 말이었다. 미리 알려주기만 하면, 어떤 사유든 보장된 연차를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트 명절 행사로 많은 물품을 나르고 처리해야 했던 날이었다. 밤사이 심한 열몸살을 앓았다. 병원에 갈 생각도 못 하고, 가을 이불 속에서 떨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식은땀으로 베개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몸을 일으킬 정도는 되었지만, 온 몸의 마디가 다 쑤셔오는 것만 같았다. 38도가 표시된 체온계를 손에 쥐고, 나는 당시 매니저였던 구찬역에게 보낼 메시지를 고민했다. ‘몸살이 있어…’, ‘열이 끓어…’, ‘급히 병원에 가야…’ 등으로 시작하는 내용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출근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다 젖은 베갯잇을 빼어 빨래통에 넣고, 물을 끓이고 믹스 커피를 타 마셨다. 마트에 도착했을 땐 출근 시간이 10분 지난 때였다. 마트의 올바른 질서 정립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구 매니저는 내 급여에서 30분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하는 게 맞겠다고 말했다. 이래야 본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지각을 쉽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면서.
마트 출근 대신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내 앞에 멈춰 선 택시를 보내고, 정류장까지 걸어 버스를 탔다. 예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지난번엔 새벽에 연락을 받았다. 승환이 고비를 넘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병원까지 택시비가 2만 원이 나왔는데, 승환은 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을 쉬며 잠들었다. 의사는 승환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기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시름 놓고 나자 돌아가는 택시비를 부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트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2시간은 꼬박 일해야 하는 돈이었다. 병원 로비 의자에서 쪽잠을 자며 첫 차를 기다렸다. 그날은 근무하는 동안 몇 번이고 무릎이 꺾였다. 오늘 병든 닭같이 왜 그래. 내가 조느라 놓친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며 미영 씨가 핀잔을 주었다. 병든 건 승환인데.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오늘은 그날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도 충분할 것 같았다. 차가운 새벽이 아닌 모든 것이 깨어나 생동하는 아침이었다. 아무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병들어 고비를 지나온 승환이, 이 아침엔 도무지 죽을 것 같지 않았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버스의 진동이 느껴졌다. 거리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 버스의 진동만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핸드백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방금 갔어요, 10시 30분. 버스는 길성병원 정류장에 10시 50분에 도착했다. 해가 떠 있는데, 부슬부슬 부스러진 비가 내렸다. 승환이 아직 누워 있는 병실까지 이어진 언덕은 높았다. 속절없이 비를 맞았다.
승환의 첫 죽음이지만, 그의 마지막 머무를 곳은 일사천리로 마련됐다. 승환의 처는 엉덩이 한 번 붙일 시간도 없이 분주하게 오가며 일 처리를 했다. 마트에서 처음 일하게 된 날처럼, 그녀 옆에서 어떤 일이든 도울 일이 없을지 서성였지만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승환의 처가 몇 가지 서류를 손에 쥐고 눈을 비비다가, 눈꺼풀을 느리게 끔뻑였다. 손에 든 짐이라도 들어주려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승환의 처가 작은 핸드백에서 인공눈물을 꺼냈다. 고개를 젖히고 왼쪽과 오른쪽 눈에 번갈아가며 떨구었다. 눈가에 넘친 인공눈물이 새어 나올 때쯤, 막 병원에 도착한 그녀의 여동생이 다가와 들고 있던 짐들을 뺏듯이 가져갔다.
“언니, 형부 때문에 고생 많았어. 울지 마, 힘 빠져. 산 사람은 살아야지.”
10년의 결혼 생활 중, 4년은 아픈 승환과 살았던 승환의 처였다. 서른여덟에 병 수발을 들기 시작해, 마흔둘 남편을 잃기까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언니를 동생이 걱정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승환의 죽음은 그녀의 동생에겐 안타까운 일이라기보다 문제의 해결, 언젠가 닿아야 할 결말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나는 승환의 오랜 병이 미안했다. 지금의 결말이 다행인 것처럼 느껴졌다.
일회용 그릇에 든 밥과 국이 앞에 놓였다. 병원에 오기 전 마신 믹스커피가 오늘 먹은 것의 전부였다. 배가 고팠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밥 반을 떼어 국에 넣고 말았다. 승환 처의 여동생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 좀 봐요. 비닐이 깔린 테이블 위에, 일회용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여름인데도, 소복하고 눈 내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여자가 앞서고 내가 뒤를 따라갔다. 여자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 얘기를 하려는 듯 두리번거렸다. 아직 조문객이 오지 않아 빈소에서 얘기를 해도 되었는데도 그랬다. 여자는 복도를 살피다가, 신발을 고쳐 신느라 꿈지럭대는 내 앞으로 왔다. 조금 있으면 저희 집 쪽 문상객들이 오셔요. 나는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한숨 소리를 내며 신발을 벗고 다시 제 언니 곁으로 갔다.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한 사람은, 승환의 처가 쪽이 아니었다. 고모였다. 젊은 시절부터 화려한 색의 옷을 좋아하던 고모는 어두운 옷을 입고 낯설게 야윈 모습이었다.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묶은 사이로, 얇은 목주름이 드러났다. 그녀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끔찍하게 싫어했을 그것. 고모는 영정 사진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승환의 사진을 한참이고 바라봤다. 나도 고모가 바라보는 쪽을 보느라, 승환의 사진과 오래 마주했다. 승환은 웃고 있었다. 고모는 다음으로 도착한 조문객이 신발을 벗고, 조의금을 내고, 고모가 앉은 모습을 보고 서성일 때까지 미동도 없이 멈춰 있었다. 고모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나는 고모 가까이 다가섰다. 고모의 오른손이 내 왼 손목을 잡았다. 고모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 뒤, 나를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끌었다. 좀 전에 차마 먹지 못한 밥이 그대로 있는 자리였다. 고모는 쟁반에 새로이 떠온 국과 밥을 손사래 치며 물렀다. 대신 내 앞에 놓인 마른 밥 반 공기를 가져다 놓았다. 조용히 술잔을 채우던 고모가 말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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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타이밍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생활용품 만드는 공장의 물건을 저렴하게 떼어오는 중개사업을 하거나, 국내의 생선이나 양말 도매업 같은 소위 ‘돈 된다’는 것들에 뛰어들었다.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복잡한 계산보다는 직감을 중시했던 아버지는, 돈으로 타이밍을 사는 쉬운 방법을 택하곤 했다.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잔뜩 손해 보고 빠져나오기를 여러 번. 아버지의 추진력만 믿고 투자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미로 같은 골목 끝, 칠이 벗겨진 파란 양철 대문이 우리가 사는 집이었다. 대문 너머로 매일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수야, 집에 있는 거 안다. 덕수야, 우리 애들이 너희 집 애들하고 나이 같은 거 알제. 덕수야, 내 돈 먼저 가만히 돌려주면 안 될까. 때론 낯선 사람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 집 곳곳을 뒤지기도 했다. 돈 될 만한 물건은 이미 다 가져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늘었다. 승환은 자주 소리 내 울었다. 어른들이 소리치고, 애원하고, 화내는 것은 괜찮았지만 승환이 우는소리는 듣기 싫었다. 작은 지물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친구는 승환의 옷장을 뒤져 승환의 낡은 겨울 점퍼와 쓸 만한 스웨터까지 모두 가져갔다. 우리와도 짜장면을 같이 먹은 적 있던 그의 아들은 승환보다 두 살이 어렸다. 그날 승환은 오래도록 울었다. 나는 달래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부모 둘 다 없어지면, 내가 동생 엄마고 아빠인 거다. 어른들의 말을 되뇌었다.
아버지가 떠나고, 일주일 되던 늦은 밤.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알루미늄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큰 소리를 냈다. 승환은 내 뒤로 숨어,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얇은 티셔츠 사이로 눈물일지 콧물일지 모를 축축함이 번져 왔다. 나는 팔꿈치로 승환을 밀어냈다. 승환은 멀어지지 않고 더 가깝게 몸을 붙였다.
“고모다. 문 열어.”
집 안에 들어선 건 사람보다 냄새가 먼저였다. 담배와 술, 향수가 뒤섞인 역한 냄새가 났다. 나는 옷소매로 코를 틀어막았다. 고모가 휘청휘청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모는 봉투에서 라면 세 개를 꺼내 냄비에 넣고 끓여 식탁에 올렸다. 승환은 제 얼굴만 한 그릇에 덜어진 라면을 금세 비우고, 더 덜어 먹었다. 나는 얼마 먹지 않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라면에서 향수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고모는 나를 힐끔 보더니 별말 없이 국물을 들이켰다.
우리가 학교에 가는 아침에도 죽은 듯 잠을 자던 고모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쯤 외출했다가 늦은 밤 돌아왔다. 매일이 다른 역한 냄새들과 함께였다. 그 냄새엔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웠다. 머리가 아팠다.
“고모가 엄마 해주는 거야?”
나는 승환의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으려다 말았다. 어른인 고모가 엄마를 해주면, 내가 승환의 부모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뭐지. 학교 숙제로 창문이 있고, 파란 대문을 가진 집을 도화지에 그리며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승환과 문 앞에 서서 고모를 반갑게 맞이해보기로 다짐했다. 그래 봐야 만화영화에서나, 어린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을 따라 한 것에 불과했지만. 문이 열리고, 고모가 들어오자 우리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땐 역하게 느껴졌던 냄새들이, 코를 박고 맡으니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피곤한 얼굴을 한 고모가 나와 승환의 팔을 떼어내며 말했다.
“이런 짓은 네 애미, 애비한테나 해라.”
고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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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나는 그 집으로 고모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딱 손가락 두 개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고모는 내가 있는 곳으로 반드시 올 것이었다. 우리가 아직, 공존하고 있는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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